그 마음을 받아들여 버린 건 잘한 선택일까. 충동이었을까 이성이었을까. 뭐가 되었든 앞으로의 삶이 더는 고통스럽지 않기를 거친 호흡으로 바랄 뿐이다. 여태 충분히 힘들었으니까, 괴로웠으니까 그 정도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말하지도 않은 내 바람을 이뤄주려는 것처럼 팀장은 충분히 헌신적이었고 희생적이었다. “팀장님.” 그가 몸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갸웃 기...
3. 기껏 유영을 탈출시킨 것은 좋았는데, 곧바로 바다로 향하지 못한다는 것은 꽤 김새고 미안한 일이었다. 동해안 근처에 위치한 도시, 그곳의 연구 시설에 우리는 당분간 머물러야 했다. 종합검사가 일주일 꼬박 걸린다는 것은 그간 유영이 얼마나 몸을 망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인간의 다리를 한 나와 달리 유영은 인어의 꼬리를 가진 채로 수조 안...
우산 아래서 네가 웃는다. 나는 미간을 찡그린다. 너와 반대되는 표정을 짓는 건 내 또 다른 버릇이다.“다 젖었잖아. 이게 뭐야.”“괜찮은데.”“뭐가 괜찮아.”나 왜 자꾸 너한테 돌아가려고 할까. 이것도 버릇이야?왜 너는, 왜 너는 그렇게 내가 사랑하게끔….나는 네 사랑의 일부밖에 되지 않는데, 넌 내 전부인 것처럼 굴어. 왜 사랑해마지않게 좋은 건데 네가...
원(圓), 평면 위의 일정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떨어진 점들의 집합.짧은 지식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원의 정의는 그렇다. 이건 내 생각인데, 무수히 많은 점의 집합이라는 건 꽤 배신감이 느껴지는 말인 것 같다. 내 눈에는 하나의 선으로 보였던 게 무수한 점의 집합…. 마치 나와 너, 그리고 너를 둘러싼 이들의 관계 같다.그런 심오한 생각일랑 잠시 접어두고, ...
2. 빠각. 칼로 비늘을 뜯어내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고통이 뒤따랐다. 그만큼 아픔이 지나가면 후련하기도 했다. 드러난 피부가 쓰라렸다. 나는 달빛을 반사하는 나의 비늘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제대로 돌볼 때는 항상 윤이 나던 비늘이었다.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지만 그가 수영장의 관리를 소홀히 해 주기 시작한 이래로 내 꼬리 여기저기에 ...
1. 수조는 비좁았고,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았다. 산소 발생기가 설치되어 있긴 했지만 자주 내 지느러미에 막혔고, 또 그다지 성능이 좋지 못했다. 수조에서 지내는 동안은 항상 몽롱한 정신이었는데, 그게 다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인어의 허리 위로는 육고기, 허리 아래로는 물고기이니 인간에게 인기가 많은 식재료였다. 내가 식재료라는 것을 받아들...
작가 이금복입니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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